걸스카우트 1996
재창조 작업을 통해 배우의 성격을 완성하는
분장사 구유진씨
어린시절 엄마가 화장대 앞에서 곱게 단장을 하고 있을 때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엄마가 나가시면 몰래 립스틱과 아이섀도 등으로 도깨비 같이 화장을 했던
기억이 난다.
또 60년대 유행했던 올린머리용 가발에 열심히 세트를 말아 드려 칭찬 받던 기억
과 동네 친구나 친척이 집에 놀러 오면 연탄에 뜨겁게 달군 고데기로 동네 미용실 아
줌마들이 하는 것을 흉내 내면서 머리를 고데해 준다며 법석을 떨었던 일들도 생각이
난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런 것들이 흥미롭고 즐거웠는지 아마 지금처럼 분장을 하
려고 보인 소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내가 지금처럼 분장을 하게 된 데에는 가정환경도 영향을 준 것 같다. 화장품공학을
전공하신 아버님과 미술을 전공한 언니들이 있었고 나도 한국무용을 전공하여 공연할
때마다 분장을 했었다. 지금 변한 건 13년간은 분장을 받는 입장이었고 무대 위에서
박수갈채를 받았었다면, 16년간은 다른 사람 얼굴 위에 분장을 해주며 무대 뒷면에
서서 그들을 지켜보는 입장이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분장을 처음 접할 때만 해도 분장사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분장사로 일하는 대
부분은 남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남자 분장사를 찾기가 더 어려워져 격세지
감을 느낀다.
분장을 하며 가장 긍지를 느꼈던 점은 단연코 ‘창조’라는 것이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분명 현실과는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전혀 별개의 세계
는 아니다. 무대 밖이든 무대 안이든 행위자는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기 때
문에 무대 막을 중심으로 한 양쪽의 세계는 닮은꼴을 갖기 마련이다. 분장의 진가는
이 같은 미묘한 차이가 존재함으로 해서 발휘된다.
작품이 요구하는 인간, 무대가 필요로 하는 성격표현 등 관람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배역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노출된 캐릭터를 얼굴에 집약적으로 표현
해 내는 작업이 분장이고, 그 작업을 하는 사람이 바로 분장사인 것이다. 그래서 공연
후 출연 배우들이 분장으로 인해 그들의 연기와 성격분석이 더욱 분명해질 수 있어서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 올 때가 분장사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이며 보람을 느
끼는 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애써 분장한 얼굴들이 공
연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씻겨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며, 배우들이 임의로
분장을 고치려 할 때면 허탈한 마음을 어디서 위로 받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엄밀히 말해 배우의 얼굴은 분장사의 화폭이며 동시에 작품이기 때문이다.
분장사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적인 배경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이라든지, 배역의 출신지에 따른 생태
학적 연구라든지. 건강과 연령에 따른 보건학적인 관찰 그리고 의학적 견지에서 보는
유전환경과 해부학. 골상학에 대한 연구 등 고려해야 할 대상이 대단히 많다. 또한 무
대 미술과 조면. 의상. 색채학, 조소, 데생, 헤어 디자인 등 섭렵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도 많다.
아직은 분장이 차지하는 비중과 인식이 매우 부족하지만 분장만이 가지고 있는 매
력과 가능성은 무대예술의 질과 완성도를 높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표현예술 영역으로의 가치성을 점차 획득해 가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
리라 믿는다.
그러한 바램으로 오늘도 나는 현란한 조명 아래서 여러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묵묵히 손을 놀리며 분장사의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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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sfmake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