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분장’이 주인공… 이색 공연/살풀이 춤서 오페라 ‘마적’까지 분야별로 다양한 기법 보여줘/구씨 손끝 거친 100여명 출연료없이 참가 SA P 연극·뮤지컬·무용·오페라의 어느 무대든 화려한 조명과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 것은 연기자들의 몫이다. 사람들은 늘 춤과 노래·대사에만 관심이 있지 그밖의 다른 것에는 무감각하다. 가끔 무대장치와 조명이 뇌세포를 자극할만큼 강한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연기자들의 분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니 「분장」한 얼굴이 눈에 거슬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실패한 연기자를 완벽하게 무대속의 인물로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뛰어난 분장이라도 늘 「조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무대는 좀 이상하다. 무대위에 서는 사람들은 제아무리 춤을 잘 추고 노래를 잘 부르고 연기를 잘 한다고 해도 모두 조연에 불과하다. 여기서는 그들의 얼굴과 몸을 치장한 「분장」이 주연으로 나서는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이 색다른 무대는 4월18일과 19일 이틀동안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질 「구유진의 분장이야기천의 얼굴로의 여행」공연이다.
구유진(35)씨는 무대분장사다.한국무용을 전공했지만 더이상 자라지 않는 키 때문에 과감하게 춤의 길에서 분장의 길로 들어섰다.대학(경희대 무용과)때부터 화장품 케이스를 들고 강의실에서 바쁘게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가기 시작한지 벌써 16년.이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대분장사가 됐지만 아직도 신참처럼 조심스럽다.
『전부터 이런 무대를 한번 마련하고 싶었지만 선배들 눈에 건방지게 비칠까봐 엄두를 못냈어요.이제는 어느 정도 경력도 쌓였고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할 것같아 두려움을 무릅쓰고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분장으로부터 시작한다.얼굴분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방향이 잡히면 그에 맞는 의상과 음악이 결정되는 식이다.다른 공연과는 정반대의 순서로 공연준비가 진행되는 것이다.
『분장에는 「기본은 이거다」라는 것은 없습니다.단지 「이 분장은 이렇게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걸 무대를 통해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구씨의 손을 한번만 거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넓적하고 밋밋한 형태의 한국사람 얼굴도 윤곽이 뚜렷한 서양얼굴로 바뀐다.특징없는 얼굴도 강렬한 인상으로 재창조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러한 무대분장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살풀이춤에서부터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모차르트 『마적』의 밤의 여왕까지 분야별 분장기법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해주요 인물의 성격이 분장을 통해 어떻게 바뀌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위해 무대에 오르는 사람만도 1백여명이 넘는다.그동안 분장을 받았던 사람들이 모두 출연료 없이 선뜻 무대에 선다.연기자와 분장사의 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무대가 될 것이다.<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1996-03-21 43면 (문화) 기획.연재 1377자
|
|
CONTENT US
작성자 : sfmake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