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4 예술의 전당
젊은 예술가의 세상읽기/구유진(분장사)
구유진의 분장 이야기
현란한 조명아래서 여러 사람들이 정심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무대위에는 조
명과 무대전환에 땀을 흘리는 스탭들의 고함에 가까운 소리와 초조한 배우들의 마지
막 리허설로 흡사 식당을 방불케 한다. 분장실도 예외는 아니다. 배역마다 독특한 성
격을 갖는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마무리 손질하느라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런 혼란함은 간혹 이래서 막이 오를까 하는 불안함을 안겨 주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어김없이 올라가는 막은 나의 우려를 비웃곤 한다.
내가 분장을 처음 접할때만해도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장사의 수는 TV,
영화쪽을 전부 합해도 채 50여명이 되지 않았다. 그런 실정이다 보니 여자 분장사를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웠다. 처음 분장을 시작한 16년전만해
도 분장은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남자 분장사를 찾기가 더 어려워져 격세지감이란 말이 새롭
다. 그 이유의 몇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미적 본능이 여자가 남자보다
앞서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분장은 일종의 화장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자의 능력만으로는 벅찬 면도 없지 않다. 작게는 몇 명에서부터 많게는 수십명에
이르는 출연자들의 성격 분장을 빠듯한 시간에 끝내려고 혼을 빼듯 배우들의 얼굴을
이리저리 매만지고 있노라면 남자들의 체력이 간절해 질 때도 있다. 분장은 여자들의
미적 감각 하나만으로 공략되지 않는 만만치 않은 영역이기도 한 것이다.
분장을 하며 가장 긍지를 느끼는 점이 있다면 단연코“창조”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무대위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분명 현실과는 구별되지만 그렇다고 전혀 별개의 세계는
아니다. 무대밖이든 무대안이든 행위자는 인간이라는 공동분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대막을 중심으로한 양쪽의 세계는 닮은 꼴을갖기 마련이다. 분장의 진가는 이같은
미묘한 차이가 존재함으로 해서 발휘된다. 작품이 요구하는 인간, 무대가 필요로하는
성격 표현 등 관람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배역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노출된 캐릭터를 얼굴에 집약적으로 표현해 내는 작업이 바로 분장인 것이다. 그래서
인지 공연후 출연 배우들로부터 분장으로 인해 그들의 연기와 성격분석이 더욱 분명
해 질수 있어서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올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해도 과
언이 아닐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애써서 분장한 얼굴들을 공연이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씻어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며(1인 대역의 분장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배우들이 임의로
분장을 고려해 들 때면 허탈한 마음을 어디서 위로받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엄밀히 말해 배우의 얼굴은 분장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분장은 창조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무대예술에서 분장은 배우의 성격을 완
성짓는 절대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완벽한 공연을 위해서는 완벽한 분장이 필요
하고 이는 완벽한 재창조를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분장은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분장은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필요로 한
다. 예를 들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대한 문화인류학적인 접근이라든지, 배역의
출신지에 따른 생태학적 연구라든지, 건강과 연령에 따른 보건학적인 관찰, 그리고 의
학적 견지에서 보는 유전환경 등 고려해야 할 대상이 대단히 넓다. 이외에도 분장은
화장의 일종으로서 재료의 화학적 반응에 대해서도 주의깊은 연구를 필요로 한다.
또한 화장품과 피부와의 접촉에 어떠한 부작용은 없는지를 관찰해야 하는 피부생리학
적인 연구도 게을리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는 바로 물체와 물체의 접촉에 따른 에
너지의 변화를 연구하는 즉 화장품 제조의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계면공학에
대한 공부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같은 연구의 본질이 바로 배역의 얼굴에 분장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같은 연구를 통해 인물 창조 작업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
니다. 분장은 일반 화장하고는 달라 우리의 생활과는 구별되는 특수한 장소에서 특별
하게 보여지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종합적인 즉 총제적인 하모니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보통 무대공연에서 분장과 조명의 관계는 그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이번 공연은 바로 이와같은 나의 분장생활 16년에 대한 평가로서 그리고 분장의
창조적인 역할과 그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으로서 준비되었다. 아직은 분장이 차지하
는 비중과 인식이 매우 부족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처럼 분장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
과 가능성은 무대예술의 질과 완성도를 일층 높이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학도 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독자적인 표현예술 영역으로의 가치성을 점차 획득해 가는데 조금
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믿는다.
박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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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sfmake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