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유진의
분장이야기
구유진 S.F메이크업 디렉터
현란한 조명아래서 여러 사람들이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무대 위는 조명과 무대 전환에 가까운 소리와 초조한 배우들의 마지막 라허설로 흡사
시장을 방불케 한다.
분장실도 예외는 아니다. 배역마다 독특한 성격을 갖는 등장인물의 얼굴을 마무리
손질하느라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런 혼란함은 때때로 ‘ 이렇게 해서 막이 오를까? ’ 하는 불안감을 안겨 주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언제나 어김없이 올라가는 막은 나의 우려를 비웃곤 한다.
분장의 과정
모든 무대예술을 완성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분장이다.
분장은 배우의 의사전달 수단으로써 배우의 모습을 배우에 맞게 변화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극중에 맞는 성격적 사실을 이해 시키며,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분장사는 분장의 본질인 배역의 성격창조를 위해, 그 어떤 경우의 성격이라도
작품이 요구하는 배우를 창출시켜야 한다. (상황에 따라 배우가 자신의 얼굴이 흉하게
변하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점에 있어서 무조건 아름답게만 표현하는
일반 메이크업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요즘 간혹 무대분장과 일반 메이크업을 구분 못 하고 작업하거나 무대분장을 지나치게
왜곡해서 작업하는 이들이 있다.
분장을 하기 위해서 분장사는 먼저 다양한 형식의 대본들을 받아 든다. 물론 배우,
연출자 외 다른 스태프들도 모두 대본을 받지만 모두 각자 자기분야에 대한 구상에
주된 관심을 갖는다.
이때분장사의 관심은 그 작품에 나오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문화 일류적인 면이다.
등장인물의 유전, 인종이나 종족, 환경, 기질, 건강, 연령, 헤어스타일, 의상, 무대미술
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서 새로운 인물로 디자인할 기본 자료를 만든다. 만약 부족하거나 의심이 가는 부분이 생기면 참고 문헌이나 역사적 인물 사진, 초상화, 영화, 공연
VTR등 자료가 될 만한 것은 모두 수집하여 분석해서 디자인해야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조건적인 모방을 피하고 나름대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자료가 모두 준비되었으면, 출연할 배우의 얼굴과 내가 디자인한 얼굴의 이미지
를 비교해서 보강할 부분과 강조해야 할 부분을 찾는다.
그래도 작품 분석이 충분히 되지 않거나, 잘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있으면 연출자와
상의해서 어떻게 분장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특수분장을 하게 될 경우에도 배우나
연출자와 충분히 토의한 후 분장을 해야 한다.
이렇듯 분장사가 한 작품의 인물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항상 주변 사람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관찰하며, 피부색이나 골격, 머리의 모양, 근육의
주결이나 늘어진 형태 등에 대해 해부학 (解剖學)적인 연구를 한 다음 그 사람의 얼굴에서 나오는 인상 즉 낙천적 인상, 강한 인상, 공격적 인상, 소심한 인상, 지성적 인상,
우둔한 인상허약해 보이는 인상 등 골상의 비밀을 찾아내면 이것이 바로 골상학의
기본자료가 되는 것이다.
이때 적용된 성격의 인물은 공연을 지켜보는 관객이 공감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작품을 표현할 때, 관상학적 지식을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많은 골격상의 이미지는 서로 조화가 되었을 때에만 더욱더 성격이 강조
되어 새로운 인물로 탄생되는 것이다.
이렇듯 복잡하고 어려운 준비과정과 디자인을 통해서 배우의 얼굴 위로 성격을 옮겨
놓는 작업을 하는데. 바로 이 작업을 우리는 ‘분장을 한다’ 고 말한다.
그런데 보통 많은 사람들은 앞에 서술한 과정은 생략한 채 단순히 현장에서 분장하는
모습만 보고 분장을 간단하고 쉬운 것으로 생각한다. 또 배우들이 임의로 분장을
고치려 하기도 하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분장을 지워서 흔적도 없이 만든다. 이럴 때는
허탈한 마음을 어디에서 위로 받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훌륭한 분장은 하나의 예술이고, 창조적 작업이다.”이처럼 분장은 훌륭한 미술품이나
공연과 마찬가지로 철두철미한 준비과정의 산물이며, 지적인 선택과 면밀한 제작으로
분장사의 예술혼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이젠 기본 베이스를 배우의 얼굴에 덕지덕지 바르고 분칠하는 것을 분장으로 아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잘못된 인식임을 분명히 일깨워 주고 싶다.
나의 분장 철학
분장은 정확한 명암의 원리와 무대 위 조명과의 관계, 그리고 무대의 크기나 거리,
작품의 색깔 등을 고려해서 심혈을 기울여 작업해야 한다. 분장의 많은 테크닉은 회화
에서 빌려온 원리와 방법이다.
조명에 의해 반사되는 빛의 형태를 임의로 변형시켜서 배우의 얼굴을 극중 배역의 얼굴
로 믿게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하이라이트로 라이트섀도우가 되는 부분의 그라데이션과 콘트라스트를 많이 연구하고 실제로 많이 그려보아야만 할 것이다. 분장은 머리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눈으로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부분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지시하고 전달하고 숙련할 때 원하는 분장이 표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분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만만한 분야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심혈을 기울인 분장 예술작품이 무대 위에 올려졌을 때에 간혹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무대 위를 비추는 현란한 색들의 조명에 의해서
무참하게 변해 버린 분장의 색과 그로 인한 이미지 때문이다.
분명히 조명의 색은 분장에 많은 영향을 주고, 너무 강한 조명은 배우의 얼굴을 평면화
시킨다. 그러므로 분장을 할 경우에는 꼭 무대 위와 비슷한 조명 아래서 해야 하며
분장이 다 되어 있는 모습을 적당한 거리에 거울을 두고 쳐다본 후 내가 원하는 성격의
얼굴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는가를 관찰하여야 한다.
하지만 자연스러움만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텔레비전 분장과 무대분장의 구분이
없어져버리게 된다. 요즘 들어서 잘못된 인식으로 더욱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항상 주장하는 무대분장 철학이 있다. 무대분장에 있어서 각 장르와 분야, 즉
무용에서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의 분장이 달라야 하고 오폐라의 분장과 우리나라
창작극, 전통극, 사실극, 서양의 번역극과 부조리극의 분장은 분명히 달라야 하며,
그 나름대로의 특징과 개성에 있어서 전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극장이나, 중극장, 대극장에 따라서는 약간의 톤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이유에서 내가 기획했던<천의 얼굴로의 여행>이라는 공연은 나의 그러한 분장
철학이 분출해 낸 소산으로서, 앞으로 분장을 공부하려는 많은 후배들에게 부족하나마
지침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분장을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장르와 다양한 분장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 나의 용기와 노력의 결과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작은 씨앗은 되었으리라
믿는다.
아름다운 예술, 분장
아직도 분장이 차지하는 비중과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분장만이 가지고 잇는 매력과 기능성은 무대예술의 질과 작품의 완성도를 한층 높이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표현예술 영역으로서의 가치를 점차 획득해 가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믿는다.
나와 같이 인식하고 동참하는 많은 동료와 후배들이 생길 때 분장은 찬란한 빛과 향기를 뿜어내는 아름다운 예술로서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
|
CONTENT US
작성자 : sfmake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