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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다섯자매의 그림이야기 (한국분장예술인협회보04/4,5월호)

작성자 : sfmakeup

작성일 : 2004-11-03 오후 5:13:22

조회수 : [ 35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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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자매의 그림이야기.jpg (69 KB)

협회 구유진 이사가 지난 4월 7일~ 13일까지 서울 인사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이번 전시회의 이름은 오색오미전. 구유진 이사와 그의 친언니 넷이 뭉쳐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회에는 구유진 이사는 물론 집안 내력에 도도히 흐르는 예술적 감성이 면면이 묻어났다.

  구유진 이사의 최근 행적이 궁금하다? 먼저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프로그램 목록을 살피라! 오페라, 뮤지컬, 연극, 무용 등 웬만한 국내 대형 공연의 분장을 도맡고 있는 분장예술가 구유진 이사. 최근 중장년층 사이에 돌풍을 일으키며 연장공연까지 마친 뮤지컬<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분장도 바로 구유진 이사의 작품이다. 현재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악극 <미워도 다시한번>의 서울공연을 마치고 지방 순회공연중이며, 바로 내달 5월 첫 주부터는 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예술의 전당)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42번가>(팝콘하우스)의 장기공연 초입에 들어가게 된다.

  일년 수첩을 꽉 채운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구유진 이사가 그간 나름대로 작품을 준비해 최근 전시회를 열었다고 하여 화제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모두 현역 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네 명의 언니가 함께한 합동 전시회라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한 뿌리에서 핀 다섯 송이의 꽃, 오색오미전

  전시회의 제목은 오색오미(五色五味)전. 매화, 지연, 여혜, 순원, 유진의 구씨 일가 다섯 자매가 각각 작품을 통해 저마다의 맛과 색을 뽐낸다는 뜻이다. 30년째 뉴욕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맏언니 매화씨는 디지털 아트를 선보이고, 역시 뉴욕에서 유명 보태니컬(Botanical-극사실적 식물화) 아티스트로 활약해온 둘째 언니 지연씨와 그의 동생이자 제자이기도 한 넷째 언니 순원씨는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보태니컬 작품들을 선보였다.
  동양화 중에서도 채색화를 전공한 셋째언니 여해씨는 평소 관심 있게 그려온 삶과 죽음, 구원과 평화 등의 주제를 담은 크리스천 스토리의 회화작품들을 준비했다. 다섯 자매 중 막내인 구유진 이사는 언니들처럼 화폭에 그림을 그리는 대신, ‘천(千)의 얼굴’을 그리는 분장사답게 석고로 뜬 인물 마스크를 캔버스 삼아 분장작품들을 선보였다.

  ‘오색오미’라는 전시명처럼 다섯 자매의 작품 색깔도 제각각이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공통된 테마가 있다. 그것은 바로 ‘꽃’. 분장을 하고 있는 구유진 이사를 제외하고는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우연찮게 네 자매 모두 공통적으로 꽃을 테마로 한 작품들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얼굴을 그리다 보니 특징 테마를 갖기 어려운 구유진 이사도 이번 전시회에서는 언니들의 영향을 받아 꽃을 소재로 사용한 화려한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다.

  전시회를 앞두고 조선일보, 국민일보, 세계일보, 여성신문 등 많은 언론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한 집안에 딸 다섯이 모두 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것도 이채롭지만, 서로 다른 분야에서 작품 활동하고 있는 그들이 한 곳에서 전시회를 열고 동시에 작품을 선보이는 것도 세간의 주목을 끌 만했기 때문이다. 특히 뒤늦게 둘째 언니를 따라 보태니컬 아트에 합류해 비교적 작가 경력이 짧은 넷째 순원씨를 제외하고는 자매 모두 현재 여성 작가로서 국내외에서 화려한 수상 및 전시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구유진 이사만 해도 ‘나비부인’ ‘라보엠’ ‘아이다’ ‘캣츠’ ‘아가씨와 건달들’ 등 오페라와 뮤지컬, 무용공연 등 1,000여 편의 굵직한 작품의 분장을 맡으면서 업계 뿐 아니라 대중 언론에도 빈번히 소개되고 있는 ‘유명 분장사’가 아닌가. 따라서 이들 다섯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 할 수 있는 합동 전시회가 각종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중년의 다섯 딸들이 팔순 아버지에게 바치는 찬가

물론 국내외에서 각자 바쁘게 활동중인 다섯 자매가 한 자리에 모여 작품 전시회를 여는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다섯 자매가 한 마음으로 뭉치게 된 계기는 바로 아버지. 이번 전시는 딸들의 예술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해주신, 이제는 팔순이 넘은 아버지를 위해 어엿한 예술 작가로 성장한 중년의 딸들이 준비한 선물이다.
  다섯 딸들이 한 목소리고 가슴 뭉클한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있는 ‘사랑으로 키워주신 자랑스런 아버지’는 화장품 업계에 오래 종사해 온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업계 대 원로, 바로 현 태평양화학의 전신인 ABC화장품 창업 멤버이자 현 태평양화학 고문인 구용섭(83)씨이다. 구유진 이사를 포함한 다섯 자매는 모두 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정성과 지원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모습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평생 난초와 꽃을 자식처럼 가꾸시던 아버지에게 ‘꽃’을 테마로 한 다섯 딸들의 전시회는 특별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시회를 처음 제안한 첫째 구매화씨는 “우리가  유난히 꽃에 심취하는 미적 감각은 부모님의 꽃 사랑과 더불어 우리에게 내려온 내력인 것 같다.”며 “작품 속에서 시들지 않는 아름다운 꽃으로 여위신 아버지 가슴에 보란과 기쁨이 되기를 바라면서 늦기 전에 작으나마 보담하고 싶은 마음으로 전시회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전시 동기를 밝혔다.

  “8남매를 뒤치다거리 해야 하는 어려운 살림에 딸 다섯이 모두 미술을 한다고 했을 때 반대도 많이 하셨죠. 하지만 일단 이 길에 들어선 이후에는 정말 많이 지원해 주셨습니다. 해외 출장 등으로 늘 바쁘신 와중에도 늘 딸들에게 필요한 물감과 미술도구 등을 구해 사들고 들어오시곤 했죠.”

분장계 베테랑의 예술적 감성이 녹은 60여 개의 마스크

  경희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무용가를 꿈꾸다 홀연 무대의 분장사로 자리바꿈을 한 구유진 이사에게도 아버지의 영향은 크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분장을 혼자서 공부할 때도 화장업계의 베테랑이셨던 아버지의 도움이 컸습니다.” 현재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도 결국 어릴 때부터 아버지 탓에 갖고 놀았던 화장품과 그림을 그리는 언니들의 영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친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손재주도 섬세한 감각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장사로서의 재능에 한몫했다. 미적 감각과 재능도 그렇거니와 인테리어 디자인 계통에서 일하고 있는 남동생까지 분야는 각기 다르더라도 결국은 한 계통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집안 내력이란 것이 분명 있기는 한 것 같다고 구유진 이사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구유진 이사는 다섯 자매의 합동전시라는 의의 이전에 “분장이 하나의 예술장르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분장작품은 아무래도 공연을 목적으로 사람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다 보니 공연이 끝나면 아무리 공을 들인 작품도 지워지기 마련이다. 이번 5자매전을 통해 작품을 공여무대가 아닌 전시회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게 되어 더욱 기쁘다는 구유진 이사. 그가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60여 개의 마스크에는 하나같이 저력 있는 분장사로서의 실력과 함께 예술적 감성이 녹아 흘렀다.
  하나하나 섬세히 공들인 작품을 들여다보자면 크고 많은 공연작품 스케쥴만으로도 쉴 틈 없이 분주할 구유진 이사가 도대체 어디서 이런 작품을 준비할 시간이 났는지 의문이 든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이걸 다 언제 준비했냐는 질문에 구 이사는 “너무 힘들었어요.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라고 살짝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언니들은 예술 친구이자 든든한 울타리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자매간의 우애도 더욱 돈독해 졌다고 한다. 다섯 자매가 모두 같은 길을 걸으며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다. 예술가로서의 직업적 동질감 외에도 동기간, 특히 자매간에 흐르는 애정을 통해 서로 조언과 자극을 주고받으며 보듬고 일으켜 함께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큰언니인 구매화씨는 30년 동안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다 순수미술을 하는 동생들에게 자극과 동기를 부여받아 늘 미련과 동경을 가졌던 순수미술 창작활동을 나이 50이 넘어 새롭게 시작하게 됐다. 지금은 뉴욕을 활동무대로 다수의 디지털 아트 개인전과 단체전을 개최하면서 창작열에 불타고 있다.
  넷째 언니 구순원씨에게는 이번 전시화의 의미가 특히 남다르다. 미술을 전공하고, 태평양화학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다년간 활동했지만 출산을 계기로 일에서 멀어지게 된 그녀가 다시 붓을 잡게 된 것은 다름아닌 둘째 언니 지연씨의 격려와 조력 덕분이었다. 평소 그녀의 감각과 재능을 아쉬하던 지연씨는 끈질기게 동생을 설득하고 손수 가르치며 보태니컬 아트의 세계로 그녀를 이끌었다. 이번 전시회는 순원씨가 그간의 공백기를 뛰어넘고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사회에 재기하는 첫 무대가 된 셈이다.
  중년을 넘어  각자 전문 분야에서의 입지와 개성이 뚜렷한 다섯 자매는 이제, 서로에게 예술적 조언은 물론 서로의 흉금까지 터놓고 나눌 수 있는 친구이자 든든한 울타리이다.

  구유진 이사는 “오색오미전이 자신의 꿈을 접고 어머니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에게 작은 불씨가 되어. 새로운 희망과 꿈을 꽃피우게 하는 전시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첫째부터 막내까지. 자랑스런 여성 작가로 성장한 다섯 딸들이 한 자리에서 피우는 웃음꽃이 향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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